폭발하는 미소녀, 10주년 기념 가이드
백지홍
캔버스를 화려하게 수놓는 미소녀. 가까이에서 확인하지 않는다면 붓질의 흔적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깔끔하게 그려진 화면은 마치 디지털 이미지를 보는 듯하고, 다채로운 색상은 그림에 밝은 분위기를 더한다. 그런데 이러한 밝음은 다소 간의 당황스러움으로 변한다. 미소녀들의 신체는 나체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선정적으로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토르소〉 연작에서는 팔다리가 있을 자리에 피가 뿜어져 나오는 폭력적 이미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과 폭력의 요소들은 앞서 말한 등장인물의 표정과 색상, 무엇보다도 만화적 그림체의 밝음과 대조되며 독특한 이질감을 전한다. 함께 하면 안 될 것 같은 요소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당황스러움. 공공장소에서 보면 안 될 것 같은 이미지를 화이트 큐브의 조명 아래에서 만났을 때의 어색함. 이윤성의 작업은 쉽게 잊히지 않고 신경 쓰이는 무언가가 되었다. 제목과 도상 배치를 통해 서양 미술사의 맥락을 끌어옴으로써 만들어 내는 노출과 폭력에 관한 설득력, 현대 시각문화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일본 대중문화와 관련된 맥락의 풍부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성과 색채, 말끔한 마감을 통해 만들어지는 회화적 완성도는 현대미술의 맥락 안에서 이윤성의 작품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이윤성의 미소녀들은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망가와 아니메, 그리고 미소녀
이윤성의 작품에 관한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첫 번째 질문, “왜 미소녀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작가가 미소녀를 그리고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미소녀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이 작가 외에도 많았다는 방증이다. 여기서 미소녀란 단순히 아름다운 소녀의 형상이 아니라, 망가, 아니메[1], 비디오 게임 등 일본 대중문화 전통 속 특정한 표현 방식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말한다. 오늘날 ‘망가/아니메’는 다양한 국가에서 고유명사화될 정도로 특수한 스타일이자, 한국의 공공기관에서도 유사 스타일을 사용할 정도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미감이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세기가 종료되기 직전까지, 한국에서 이러한 일본 스타일은 ‘왜색’으로 불리며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었다는 점이다. 지리적 가까움과 일본의 하청 공장 역할을 하던 산업구조로 인해 일본 대중문화가 물밑에서는 퍼지고 있었으나, 많은 경우 일본의 콘텐츠라는 사실은 숨기고 유통되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에야 일본 콘텐츠들이 정식으로 수입되었고, 동 시기에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일본 문화는 지리적 가까움 이상으로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1990~2000년대 성장기를 거친 이윤성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세대의 대표 작가다. 그림이 좋았는데 접할 수 있는 고퀄리티의 이미지가 망가와 애니메이션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전통적인 회화를 공부하고 그리며 학부시기를 보냈다. 변화는 졸업전시를 앞두고 일어났다. 자신을 미술의 길로 이끌었던 망가/애니메이션풍의 그림을 졸업 작품으로 선보이기로 결심한 것. 디지털로 작업한 〈최후의 심판〉(2010)은 미켈란젤로가 1533년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린 동명의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미소녀로 바꿔 재구성했다. 육체미를 강조하며 그려졌던 원작의 인물들은 나체로 그려진 미소녀들에게 설득력을 제공했다. 380×290cm의 거대한 크기, 망가/아니메 형식의 그림체, 자주색을 주색으로 한 강렬한 색채까지 이윤성의 〈최후의 심판〉은 졸업 전시에 선보인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후 이어질 이윤성 세계의 기반이 되었다.
미소녀를 담는 그림체
시각적인 면에서 이윤성 작업의 핵심은 망가/아니메의 ‘미소녀 미학’의 매력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수십 년에 걸쳐 정립된 스타일을 캔버스에 옮기면 되는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이윤성의 회화는 망가/아니메 미학을 캔버스에 옮긴 비교적 이른 사례다. 한국 미술계에도 이윤성에 앞서 만화의 형식을 선보인 작가들이 있었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카툰’의 영향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의 원인으로는 팝아트의 뿌리인 미국 팝아트의 영향과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세대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그림체’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왔다는 점 역시 이윤성의 차별점이다. 적지 않은 팝아트 작가가 자신을 대표하는 특정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세계를 펼쳐나간 데 반해 이윤성은 망가/아니메 작가들이 그러하듯 미소녀를 담는 그림체 자체를 자신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일본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1928-1989)가 미국 만화 스타일을 변주한 뒤 수많은 후배 작가를 거치며 확립된 신체 표현방식(동그란 이마, 큰 눈, 작고 오뚝한 코, 좁은 턱, 슬림한 체형, 과장된 가슴표현)이나, 채색 방식(여러 그림을 그려야 하는 셀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의를 위해 두 가지 색을 이용한 명암 표현, 비슷한 외모의 캐릭터들을 구분하기 위한 알록달록한 머리카락 색상)은 따르면서 이목구비의 비율이나 색채 조합 등에서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신만의 그림체를 만든 것이다. 이윤성은 자신을 매혹시킨 미소녀 미(美)의 정수를 자신만의 해석을 거쳐 선보이고자 했다. 이 점에서 이윤성은 앞서 망가/아니메를 소재로 명성을 얻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나 아이다 마코토와 차별점을 보인다. 이들은 미소녀의 재현 방식을 작업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아름다움’보다는, 그 내부에 자리한 선정성과 폭력성과 같은 일본 사회의 특수한 징후들에 초점을 맞췄다. 흥미로운 점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윤성의 미소녀들도 이러한 선정성, 폭력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자극 미소녀, 관능적이고
욕망. 이윤성 작가의 작업에 관한 두 번째 질문 “왜 미소녀의 이미지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인가”에 대한 답변을 보다 자세히 풀어보자. 상업적 목적으로 변주된 신체가 대상화되는 것, 다시 말해 작가와 관람객, 창작자와 소비자의 욕망이 투사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자본은 이러한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2] 남성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년만화에서 직접적인 성애 표현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여성 캐릭터가 넘어지는 등의 이유로 팬티가 노출하는 일명 ‘판치라’ 장면이나 샤워 장면 등이 ‘서비스 장면’으로 장르 문법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망가/아니메 문화 속에서 성적인 코드는 필요에 따라 노골적으로, 때로는 세련된 방식으로 선보였다. 이윤성 작가의 미소녀는 이러한 발전 과정의 한 끝자락에 자리한다.
‘오타쿠 예술가’라 자칭하는 무라카미 다카시는 피규어 형태의 조각 작품 〈HIROPON〉, 〈나의 외로운 카우보이〉(1997) 등에서 과장된 망가/아니메 스타일의 신체 표현을 불쾌한 영역까지 밀어붙임으로써 미소녀의 아름다움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성도착증적 요소를 표현했다. 아니메 미학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을 강조하여 자국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진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과, 나체의 미소녀를 통해 역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신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풍자/패러디하면서도, 망가/아니메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이윤성의 작품은 유사해 보이지만, 지향점은 반대 방향에 있다.
고자극 미소녀, 폭력적인
다소 당혹스러운 것은 미소녀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이윤성 작가가 첫 개인전《NU-TYPE》에서 선보인 〈토르소〉 연작은 이상화된 신체들의 팔다리를 훼손되고 피가 흩뿌려지는 가학적인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애써 만든 아름다운 신체들을 어찌하여 훼손하는가.
망가/아니메가 품은 또 다른 매력은 감각적인 액션 장면 혹은 폭력성에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만화가 액션 망가 『드래곤볼』이며 오늘날에도 유사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서 방증하듯 말이다. 성애물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액션활극이라는 상업적인 이유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생생한 기억, 사무라이 문화, 탁월한 표현력을 선보인 작가의 등장[3] 등 일본 문화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폭력과 파괴를 동반한 액션 연출은 발전해 나갔다.[4] 〈토르소〉 연작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가 전차의 해치를 억지로 열다가 기계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양팔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다.[5] 이윤성 작가의 〈토르소〉를 보았을 때 캐릭터들의 동세에서 〈공각기동대〉가 떠올랐고, 작가는 영향을 인정했다. 망가/아니메의 미학적 성취들은 이윤성 세계를 구성하는 조각들이 된다.
〈토르소〉의 핵심 아이디어는 앞선 〈최후의 심판〉(2010)과 마찬가지로 서양미술사에서 시작한다. 이탈리아어로 ‘몸통’을 뜻하는 토르소(Torso)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상 중 훼손되기 쉬운 머리나 팔, 다리 부분이 잘려 나가고 몸통만 남아있는 형상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냄으로써 미술사 속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 토르소는 친숙한 형상이지만, 팔다리가 없는 상태를 아름답거나,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학습된 시선이다. 이윤성은 미소녀들의 팔다리를 잘라 토르소 형상을 만듦으로서 부자연스러움을 일깨운다. 이때 망가/아니메 풍으로 이상화된 신체와 절단의 고통과는 무관해 보이는 표정으로 인해 더욱 위악적으로도 보이는 ‘과장’은 신체 훼손이라는 소재의 거부감을 오히려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팔과 다리가 있어야 할 지점에서 과장된 색상과 형태의 자주-보랏빛 액체가 뿜어져 나오는데, 현실성이 없다 보니 실제 피처럼 보이지 않고 어떤 에너지가 캔버스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화적 내용에 따라 팔다리가 재생하거나, 팔다리부터 변신하는 장면이라 말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는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다루는 아이다 마코토가 팔다리가 잘린 소녀의 이미지를 진지하게 담은 〈개〉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대비된다.
그럼에도 〈토르소〉는 불편하다. 팔다리가 변신/재생되는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절단면을 분명히 표현한다는 점에서 감상자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최후의 심판〉이 받았던 주목 이상으로 많은 주목을 받게 했다. 이후 진행된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신체 절단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토르소〉에서 흩뿌려진 자줏빛 액체는 예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토르소〉는 이윤성의 대표작으로서 오늘날까지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제작되고 있다. 첫 개인전의 충격 요법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었든 매우 효과적이었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절단/분할과 변신이라는 모티프가 첫선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토르소〉는 본격적인 작품세계의 시작점으로 중요하다. 지금부터는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살펴보자.
〈토르소〉, 〈수태고지〉
《NU-TYPE》은 〈토르소〉 연작이 첫선을 보인 전시로, 전시장의 중앙에는 삼면화 형식으로 구성된 〈수태고지〉가 자리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될 것임을 알리는 장면이 담긴 중앙 캔버스에는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 휘날리고 있다. 우측 하단 여성의 등에 달린 작은 날개는 그가 가브리엘임을, 우측 상단 여성의 조금은 당황한 표정은 그가 성모마리아임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윤성이 택한 고전적 주제 중 〈수태고지〉는 누드 표현과 관련이 없을뿐더러 종교적 인물들의 신체를 온전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세상에 변화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수태고지 장면은 〈토르소〉 연작이 팔다리부터 시작되는 마법소녀의 변신 장면 같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다나에〉
《NU-FRAME》(두산갤러리 서울, 2015)에서 선보인 〈다나에〉는 예언을 피하려는 아버지에 의해 첨탑에 갇혀 있다가 황금비의 형태로 다가온 제우스의 자식 페르세우스를 잉태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다나에를 주인공으로 한다. 이윤성은 많은 예술가들이 관능적으로 묘사해 온 다나에를 표현하면서, 오랫동안 갇혀 있으면서 느꼈을 다양한 감정을 각기 다른 세 가지 캐릭터로 묘사했다. 이러한 분할은 〈세일러문〉, 〈프리큐어〉 등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대표색으로 표현되는 마법소녀의 전통을 따랐다.
〈조디악〉, 〈헬리오스〉, 〈메두사〉
〈다나에〉에서 선보인 마법소녀의 특징은 황도 12궁을 미소녀화한 〈조디악〉을 통해 더욱 뚜렷해진다. 2018년 《sub-frame》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헬리오스〉를 선보였던 이윤성은 2019년 《Inside of light》에서 13명의 캐릭터를 330×330cm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담은 〈조디악〉(2019)을 발표한다. 2021년 《Nu Collection》에서는 황도 12궁을 상징하는 열두 캐릭터의 초상화를 선보였고, 2022년 《SD ZODIAC》에서는 캐릭터를 아이처럼 변형시킨(Super Deforme)[6] 작품을 선보였다. 같은 해 Gallery Joyana에서 개최된 《ZODIAC》에서는 2019년 선보인 것과 같은 황도 12궁 캐릭터의 초상화를 보다 간결하게 변화한 그림체로 선보였다. 〈조디악〉은 이윤성의 작업 중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많은 변주를 선보인 연작이다. 이러한 풍성함은 〈조디악〉이 뿌리내린 망가/아니메 문화 속 ‘마법소녀’의 토양이 비옥하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마법 능력으로 변신하여 활약하는 마법소녀는 망가/아니메를 대표하는 장르다.[7]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티프로 하여 한국에서도 국민 만화로 자리 잡은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은 그 대표적인 예로, 〈조디악〉의 직접적 조상과 같다. 《Nu Collection》에서 〈조디악〉 초상과 함께 전시된 〈메두사〉는 메두사의 ‘잘려진 머리’라는 다른 맥락을 담았지만, 얼굴만 선보이는 형태에서는 큰 유사성을 보인다. 〈메두사〉의 얼굴이 ‘세일러문’ 캐릭터와 닮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머리카락을 대신해 자라난 뱀이 그려진 대상이 메두사임을 밝힐 뿐이다.
〈라오콘〉
뱀과 함께하는 육체는 2024년 개인전 《FRAGMENTARY》에서 선보인 〈라오콘〉에서 극대화된다. 헬레니즘 조각의 걸작으로 불리는 〈라오콘〉을 흑백의 회화로 옮긴 이 작품은 〈토르소〉 이후 지속된 ‘절단’의 개념을 비롯하여 작가의 기존 작업을 종합하는 작업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라오콘과 두 아들을 대신해 그려진 세 여성이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눈을 제외하면 세부 묘사 없이 검은색 선으로 표현된 뱀들로 휘감긴 인물들의 얼굴에 띤 홍조는 고통이 아닌 섹슈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서 작가는 고전을 핑계 삼는다(또는 풍자한다). 나체의 남성이 부풀어 오른 근육을 과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찡그리기보다는 멍한 표정을 짓는 〈라오콘〉 조각 자체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검은 선으로만 표현된 뱀은 일종의 촉수처럼 보이는데, 가즈시카 호쿠사이의 〈어부 아내의 꿈〉(1814)을 시초로 하여 수많은 일본 성인 콘텐츠에서 여성의 신체를 자극해 온 촉수를 그리스의 뱀과 연결하는 재치가 돋보인다. 뱀이 나타내는 것은 성적인 요소만이 아니다. 흑백으로 그려진 캐릭터 위로 뱀으로 표현된 검은 선이 지나간 모습은 마치 산산이 조각난 대리석 조각처럼 보인다. 전시 제목 ‘불완전한’은 검은 선으로 가려져 전체를 볼 수 없는 상황을 뜻하는 것 아닐까. 작가의 강점 중 하나였던 선명한 색상을 포기하고 택한 흑백은 전시장에 ‘출판 만화 같은 느낌’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함께 수행한다. 말풍선은 그 화룡점정.
이윤성은 ‘성과 폭력’이라는 망가/아니메에서 특수한 표현방식이 발전했으면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보편적인 요소를 작품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일찍이 주목받기에나, 심화, 확장, 변주하며 오래 활동하기에나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이 아니라 미적인 완성도를 갖춘 작품으로 만들어낼 회화 실력과 작품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찾아내는 재치 또한 뛰어나다. 무엇보다 이윤성은 미소녀’를 그리고 그 세계를 탐구하는 데 진심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하위문화를 그것을 둘러싼 사회/문화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작업과 달리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며, 망가/아니메 화풍을 표면적으로 차용한 작품이 일러스트와의 차이를 설득하고 현대미술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도 차별된다. 이윤성의 폭발하는 미소녀, 다음 10년을 기대하며 20주년 가이드도 작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